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카하시 카즈키 (문단 편집) ==== 사인 ==== 이후 3개월 후 10월 11일 [[https://www.stripes.com/branches/army/2022-10-11/okinawa-riptide-rescue-yu-gi-oh-7646714.html|해외 언론]][* Stars and Stripes라는 신문으로, [[해외 주둔 미군]]을 다루는 언론이다.]을 통해 사실상 유력한 사인이 밝혀졌다. 당시 사건으로 군사훈장 후보에 오른[* '적과의 교전'과는 무관한 일로 민간인을 구했기에 후보 조건에 충족했다고 한다.] 로버트 부르조(Robert Bourgeau) 소령의 증언으로 당시 상황이 자세히 설명되었다. 증언에 따르면, 당시 해안에서 약 100야드 떨어진 [[이안류]](소용돌이)에 미군 병사와 모녀가 휩쓸렸다는 제보가 들어오자 자신과, 같은 스쿠버 다이빙 강사[* 부르조 소령은 스쿠버 다이빙 강사를 겸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와 함께 구조에 나서게 되었다. 이때 다른 수강생들이 타카하시가 돕겠다며 같이 입수하는것을 목격하였다. 얼마나 격렬한 상황이었는지, 부르조 소령이 여자아이와 그 어머니[* 아이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었다. 결과적으로 부르조 소령은 미군 병사와 모녀까지 총 3명을 구조했으며 부르조 소령 자신 또한 살아남았지만, 타카하시 카즈키는 이 사건에서 유일한 사망자가 되었다.]를 구조하는 와중에 같이 들어간 강사가 힘이 빠질 정도였고 남은 제 3의 병사를 구하려 다시 물에 뛰어들었지만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같이 들어간 동료 강사마저 휩쓸릴 위기에 처하자 먼저 빠져나온 뒤 강사와 병사도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인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병사까지는 동료 구조자와 함께 어떻게 극적으로 끌어내어 구조하는데 성공했으나, 프로 구조자들조차 두 명 다 위험에 빠진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그 두 명이 타카하시 카즈키를 추가로 발견했더라도 구조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타카하시 카즈키는 결국 소용돌이에 휩싸여 실종된 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것. 이 와중에 [[해상보안청]]은 위의 목격자 진술을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이 사실을 증언한 부르조 소령은 "그는 [[의사상자|누군가를 구하려다 죽었던 영웅]]"이라고 증언하였으며, 소식이 전해지자 "마지막까지 [[의인]]으로 살고 갔다"라는 안타까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후까지 애청자들도 끝까지 생각했고 사람을 구하다 의롭게 간 진정한 의인. 한편, 침묵을 지키던 해상보안청은 10월 14일에야 해당 보도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발표하였다. 해당 발표에서 해상보안청은 시신 발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상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구출된 소녀의 정신 건강을 염려하여 발표를 미뤘다고 밝혔다.[[https://www.asahi.com/articles/ASQBG752JQBGUTIL03W.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